
솔직히 홍콩 여행 전에는 빅토리아 피크나 침사추이 야경 정도만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정작 기억에 남는 건 골목 안 낡은 건물, 책 냄새나는 카페,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로컬 밥상이었습니다. 뻔한 코스를 피해 걷다 보면, 홍콩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도시입니다.
홍콩의 성수동, 삼수이포에서 길을 잃다
처음 삼수이포골목에 들어섰을 때, 저도 처음엔 그냥 오래된 동네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빈티지 소품 가게, 작은 미용실, 지역 주민이 드나드는 노포가 층층이 쌓여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홍콩의 성수동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이 동네에서 특히 눈길을 끈 건 통라우 건물들이었습니다. 통라우란 1950~60년대 홍콩에 지어진 다층 상가주택 형식의 낡은 건물을 가리키는데, 겉보기엔 허름해 보여도 안으로 들어가면 그릇 가게, 패브릭 샵, 디자이너 공방 같은 보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 "이게 맞나?" 싶은 불안감이 드는 게 사실인데, 그 불안감을 넘어서야 진짜 구경이 시작됩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 봤을 때, 예쁜 화병과 도자기가 가득한 공간이 펼쳐졌을 때의 그 기분은 지금도 선합니다.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은 게 있는데, 홍콩 건물의 층수 표기 방식입니다. 홍콩에서는 G층이 우리나라의 1층에 해당하고, 홍콩의 1층은 우리 기준 2층입니다. 쉽게 말해 엘리베이터에서 "1"을 눌렀다가 엉뚱한 층에서 내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처음 방문할 때는 꼭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처음엔 헷갈려서 한 층을 잘못 내렸습니다.
삼수이포는 홍콩 관광청에서도 '도심 속 로컬 문화 거리'로 소개하는 지역인 만큼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동네입니다.
아침은 차찬텡에서, 딤섬으로 시작하는 홍콩의 하루
홍콩 여행에서 아침을 제대로 즐기려면 차찬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차찬텡이란 홍콩식 경양식 찻집을 뜻하는데, 커피와 홍차를 반반 섞은 인양이나 버터 토스트, 달걀 프라이를 곁들인 세트 메뉴가 대표적입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지만, 현지인들이 매일 아침 들르는 생활 밀착형 공간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매력적입니다.
제가 직접 먹어봤는데, 샤오마이와 하가우는 역시 홍콩에서 먹어야 제맛이었습니다. 샤오마이는 돼지고기와 새우를 넣어 쪄낸 딤섬이고, 하가우는 새우 소를 얇고 반투명한 밀가루 피로 감싼 딤섬입니다. 한국에서도 딤섬을 자주 먹는 편인데, 갓 쪄낸 상태로 나오는 것과 식은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피의 탄력과 육즙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차슈덮밥도 빠질 수 없습니다. 차슈란 광둥식 바비큐 돼지고기를 의미하는데, 달짝지근하면서도 간장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어 밥과 함께 먹으면 육포처럼 쫀득한 식감이 납니다. 밤에 야식으로 먹으면 다음 날 얼굴이 달덩이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가는 맛입니다. 많이 걷고 돌아온 밤에 먹는 한 그릇이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느낌이랄까요.
홍콩의 음식 문화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서도 주목한 바 있으며 딤섬을 비롯한 광둥요리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미식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북카페에서 오후를 보내는 방법
홍콩에도 이런 카페가 있구나 싶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언덕 위에 자리한 북카페였는데, 들어서자마자 천장까지 닿을 듯 쌓인 책들과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모를 곳이었는데, 그만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컸습니다.
북카페란 책 판매와 카페 기능을 결합한 복합 문화 공간을 뜻합니다. 단순히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곳을 넘어, 특정 큐레이션 테마에 따라 책을 선별해 진열하고 공간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도록 설계한 것이 요즘 북카페의 특징입니다. 이 카페도 그런 방향으로 공간을 꾸민 것 같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저는 카페에서 굳이 책을 읽어야 하나 싶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책장 앞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두고 홍콩 골목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의외로 편안했습니다. 번잡한 관광지를 하루 종일 걷다가 잠깐 쉬어가는 용도로는 최적의 장소라고 느꼈습니다.
마차 라떼를라테를 맛보려다 이날도 품절이어서 결국 아메리카노로 대신했는데, 그 커피 자체가 꽤 맛있었습니다. 마차 라테를 못 먹어 아쉬운 분이라면 차찬텡에서 인양을 주문해 보는 것도 좋은 대안입니다. 커피와 홍차가 섞인 특유의 씁쓸하고도 부드러운 맛이 홍콩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조합이거든요.
PMQ에서 만나는 홍콩의 과거와 현재
PMQ는 과거 경찰관 부부 기숙사로 사용되던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리노베이션이란 기존 건물의 구조는 유지하면서 내부를 새롭게 개편하는 방식을 뜻하는데, 단순히 새로 짓는 것과 달리 공간의 역사와 맥락을 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릅니다. PMQ가 그 좋은 사례입니다.
지금은 디자이너 브랜드, 소품 가게, 독립 공방 등이 입점해 있어 서울의 쌈지길 같은 분위기가 나기도 합니다. 입점 브랜드 수가 워낙 많아 다 둘러보기엔 시간이 촉박한 편인데, 이럴 때 모든 층을 훑으려 하기보다 한 층에서 장인이나 디자이너와 짧은 대화를 나눠보는 게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됩니다. 이런 공간에서 실제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쇼핑보다 더 가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경을 직접 제작하는 공방도 있었고, 로컬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작은 패션 브랜드도 있었습니다. 눈에 확 띄는 유명 브랜드를 쫓기보다 낯선 브랜드 앞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는 것, 그게 PMQ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MQ 방문 시 미리 챙기면 좋은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위치: 홍콩 센트럴, 에스컬레이터로 접근 가능
- 운영 시간: 일반적으로 오전 10시~오후 8시 (입점 매장별 상이)
- 층수: G층 포함 여러 층 구성, 홍콩 기준 층수 표기에 주의
- 특징: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다수, 워크숍 및 팝업 행사 정기 개최
홍콩은 걷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층위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낡은 통라우 건물과 세련된 복합 문화 공간이 같은 거리에 공존하고, 노포 차찬텡과 감각적인 북카페가 몇 블록 사이에 붙어 있습니다. 관광 코스를 따라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한 번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언덕 위 카페로 올라가거나 낡은 건물 안 화물 엘리베이터를 용기 있게 눌러보는 경험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그 낯선 선택이 홍콩 여행에서 가장 선명한 장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