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면적은 800헥타르,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2.7배에 달합니다. 처음 그 숫자를 접했을 때는 그냥 숫자로만 느껴졌는데, 직접 돗자리를 깔고 앉아 납작 복숭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이 다 있냐"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베르사유 피크닉 — 궁전 안 들어가는 것도 전략입니다
파리에 왔다면 베르사유 궁전 내부 관람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정원만으로도 충분히 하루를 채울 수 있다고 봅니다. 궁전 내부 관람을 과감히 건너뛰고 퀸스 게이트로 진입해 정원과 운하 쪽에 자리를 잡으면, 극성수기에도 비교적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퀸스 게이트란 베르사유 정원 남쪽에 위치한 별도 출입구로, 본관 입구보다 관람객 밀도가 낮아 피크닉 자리를 잡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제가 직접 가보니 궁전 정문에서 운하까지 걸어가는 데만 15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지도에서 보던 것과 실제 스케일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트에서 미리 사온 과일과 빵, 집에서 챙겨 온 간식을 피크닉 매트 위에 꺼내 놓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림 같은 장면이 완성되었습니다. 특히 납작 복숭아, 이른바 피치 플랫이라 불리는 품종이 그날 최고의 한 입이었습니다. 피치 플랫이란 일반 복숭아보다 납작한 형태의 품종으로,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해 상온에서 그냥 먹기에 적합합니다. 바게트가 처음엔 딱딱하게 느껴졌는데 먹다 보면 고소한 맛이 올라오는 것도 그때 처음 경험한 감각이었습니다.
베르사유 정원을 즐기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퀸스 게이트로 입장하면 본관 앞 혼잡을 피할 수 있습니다.
- 피크닉 매트와 간식은 파리 시내 마트에서 미리 준비하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 운하까지 걷는 데 15분 이상 소요되므로 편한 신발은 필수입니다.
- 정원 입장은 무료 시간대가 있으므로 공식 사이트에서 사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베르사유를 나온 뒤에는 에펠탑 앞에서 화이트 에펠 점등을 기다렸습니다. 화이트 에펠이란 매 시 정각에 에펠탑 전체를 하얗게 반짝이게 하는 조명 이벤트를 말하는데, 점등 1분 전부터 광장 전체가 조용해지다가 불이 켜지는 순간 함성이 터집니다. 그 순간 외국인들이 아바타 OST와 강남스타일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파리 한복판에서 강남스타일을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우스우면서도 묘하게 뭉클했습니다.
몽마르트르 언덕과 파리 치안 — 두 번째 방문에서야 보인 것들
몽마르트르는 파리 18구에 위치한 해발 130m의 언덕 지구입니다. 사크레쾨르 성당이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도심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크레쾨르란 '성스러운 심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19세기말 건립된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의 성당입니다. 제가 올라간 날은 날씨가 22도에서 25도 사이로 한국의 봄과 비슷했는데, 계단을 다 오르고 나서 마주한 파리 전경은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 줬습니다. 한동안 말을 잃고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몽마르트르 빵집에서 산 크루아상은 솔직히 기대보다 아쉬웠습니다. 버터 풍미가 확 올라와야 하는데, 아마 이른 시간에 구운 것이 오래 진열된 탓인지 퍽퍽했습니다. 제 경험상 크루아상은 갓 구운 직후가 아니면 맛의 차이가 꽤 납니다. 저녁에 방문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리 치안에 대해서는 이번 방문에서 체감 차이가 컸습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이후 프랑스 정부가 강화한 공공 안전 정책의 일환으로 도심 내 순찰 인력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공 안전 정책이란 정부가 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 인력 배치, CCTV 확충, 관광지 집중 관리 등을 시행하는 일련의 조치를 말합니다. 실제로 올림픽 기간 파리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약 1,150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이후 치안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출처: 프랑스 관광청).
제가 직접 돌아다녀보니, 예전에 왔을 때와 비교해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지하철에서도, 에펠탑 광장에서도 예전처럼 불안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소매치기 피해는 여전히 보고되고 있으므로 방심은 금물입니다. 유럽 주요 관광지의 소매치기 피해 통계에 따르면 파리는 여전히 주의 여행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출처: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여행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긴장을 내려놓고 즐기게 되었습니다.
르봉 마르셰 지하 식품관도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다양한 튜브형 식품과 프랑스 로컬 브랜드 제품들이 가득했습니다. 쇼핑보다 그 공간 자체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이 갔습니다. 보주광장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과자를 꺼낸 것도, 팔레 루아얄 정원 벤치에서 빵을 뜯으며 고양이를 구경한 것도 모두 사람 냄새 나는 파리였습니다.
파리 여행은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체크리스트처럼 소화하는 것보다, 한 곳에서 천천히 시간을 쓰는 것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베르사유 정원에서의 피크닉,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서의 침묵, 에펠탑 앞에서 터진 웃음. 다음에 파리에 간다면 똑같이 정원부터 찾아갈 것 같습니다. 처음 가는 분이라면 베르사유 내부 관람보다 정원 피크닉을 먼저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쪽이 훨씬 파리답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qsq7M2JdRQ&list=PL_O7H7L7mZ27X-MQFoSqGhH0iS3pXTbMbC&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