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계획을 아무리 꼼꼼하게 짜도, 막상 현지에서는 몸이 먼저 포기하는 날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마쓰야마에서 딱 그런 날을 겪었습니다. 섬 투어를 기대했지만 체력이 바닥나 체크인 직후 세 시간을 내리 잤고, 대신 "그럼 열심히 먹자"는 결론으로 하루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마쓰야마를 가장 깊이 느낀 하루가 됐습니다.
마쓰야마의 로컬 미식, 도미 솥밥과 레몬 버터 라멘
마쓰야마가 속한 에히메현은 일본 내에서도 세토내해 어업의 중심지로 꼽힙니다. 세토내해란 혼슈·시코쿠·규슈로 둘러싸인 일본 최대의 내해로, 조류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덕분에 어패류가 풍부하고 특히 도미의 품질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해역입니다. 그 명성 그대로, 저도 현지 도미 전문점에서 도미 솥밥을 직접 먹어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미 솥밥은 단순히 생선을 얹은 덮밥이 아닙니다. 솥 안에서 도미와 함께 지어낸 밥은 생선 지방과 감칠맛이 쌀알 하나하나에 배어 있고, 따뜻한 육수를 부어 먹으면 오차즈케 스타일로도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오차즈케란 밥 위에 뜨거운 차나 육수를 부어 먹는 일본식 말이죠. 밥 자체에 간이 짭짤하게 배어 있어서 육수 없이 그냥 먹어도 충분히 완성된 맛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먹어보니 "밥만 먹어도 맛있다"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레몬 버터 라멘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뜻밖의 발견이었습니다. 에히메현은 국내 레몬 생산량의 약 30%를 담당하는 일본 최대 레몬 산지입니다. 그 레몬을 활용한 라멘인데, 처음에는 '라멘에 레몬이?' 싶었지만 한 젓가락 먹자마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국물이 레몬의 산미 덕분에 굉장히 깔끔하면서도 버터의 풍미가 뒷맛을 감싸는 구조였습니다. 마늘을 추가하니 국물 맛이 한층 깊어졌는데, "한국인은 역시 마늘"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된 메뉴라고 하는데, 제 경험상 그 명성이 충분히 납득됩니다.
마쓰야마 미식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메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도미 솥밥: 세토내해산 도미를 사용한 에히메 대표 향토 요리. 육수를 부어 오차즈케 스타일로 마무리
- 레몬 버터 라멘: 에히메 레몬을 활용한 현지 특화 라멘. 마늘 추가 시 감칠맛이 배가됨
- 귤 주스 비교 시음: 품종별로 맛이 달라 현지에서 직접 비교하는 재미가 있음
- 저녁 마트 할인 초밥: 저녁 7시 이후 20% 할인 스티커가 붙기 시작하므로 타이밍을 노릴 것
귤 주스와 편의점 할인 초밥, 마쓰야마의 소소한 미식 전략
마쓰야마를 상징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귤입니다. 에히메현의 온주밀감 생산량은 일본 전체 1위 수준으로, 온주밀감이란 씨가 없고 껍질이 얇아 손으로 쉽게 까먹을 수 있는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귤 품종을 말합니다. 관광지 곳곳에 귤 관련 디저트와 음료가 넘쳐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저도 상점가를 걷다가 귤 주스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췄습니다. 품종별로 컵이 따로 나오는데, 직접 마셔보니 정말 맛이 다 달랐습니다. 가장 달고 진한 쪽이 제 취향에는 1등이었고, 레몬 계열은 완전히 따로 시킨 것처럼 새콤한 맛이 강했습니다. 가격이 가장 비싼 것이 가장 맛있었는데, "역시 비싼 게 비싼 값을 한다"는 결론에 일행 모두 동의했습니다. 4,000원짜리 귤 주스 한 잔이 이렇게 만족스러울 줄은 몰랐습니다.
저녁에는 마트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오후 7시가 넘자 직원이 초밥 팩에 20% 할인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타임세일 전략인데, 원래 사려던 것을 더 비싼 초밥으로 바꿨는데, 퀄리티가 예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편의점 간식 수준이 아니라 이자카야에서 먹어도 손색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처럼 마쓰야마는 거창한 오마카세나 유명 레스토랑을 예약하지 않아도 소소한 길거리 음식과 마트 타임세일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한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자유여행의 진짜 묘미가 여기 있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마쓰야마를 계획하신다면, 도미 솥밥과 레몬 버터 라멘은 일정에 반드시 넣으시길 권합니다. 여기에 시모나다 방향 요산 라인 열차에서 세토내해 바다를 창밖으로 바라보는 시간까지 더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 날에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으로 충분히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 마쓰야마가 제게 알려준 가장 큰 교훈이었습니다.
2026.04.29 - [분류 전체보기] - 마쓰야마 여행 (도고 온천, 오즈성, 열차)